버버리의 새로운 로고, 세리프의 부활?
이번 로고는 버버리라는 브랜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 깊은 브랜드의 진정성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2023-03-02
버버리가 (또) 새로운 로고를 선보였다. 로고를 바꾼 지 채 5년도 되지 않았는데! 보테가 베네타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다니엘 리 Daniel Lee가 버버리의 이번 브랜드 리뉴얼을 맡았다. 이번 로고의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역시 산세리프에서 세리프로의 회귀일 것이다.
버버리의 새로운 로고는 20세기 초반에 처음 사용되었던 브랜드 초기 로고에서 영감을 받았다. 대문자 B와 R에서 가져온 유기적인 볼(Bowl) 디자인이 이번 로고타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세리프의 크기는 많이 축소되고, R의 다리(Leg)도 곡선이 빠지고 쭉 뻗어 오리지널 로고보다는 훨씬 현대적이고 시크한 인상으로 해석된 것을 볼 수 있다.
버버리는 2018년, 발렌시아가나 생로랑 등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와 함께 ‘심플’ 미니멀리즘 산세리프 유행에 탑승했다. 역사 깊은 브랜드 유산이었던 세리프를 버린 것은 시대를 타지 않는 산세리프의 타임리스한 장점을 취하는 동시에, 고루함을 탈피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로의 혁신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브랜드의 세계는 복잡하기 때문에 로고에서 세리프의 유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산세리프 로고 유행 당시에 글꼴의 다양성이 없어지는 것 같아 타입 디자이너로서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모든 브랜드의 로고가 쌍둥이처럼 똑같아졌고, 이런 현상을 풍자하는 밈이 생성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버버리의 새로운 시도는 개인적인 디자인 취향을 떠나서 환영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번 로고는 버버리라는 브랜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 깊은 브랜드의 진정성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영국적 럭셔리의 현대적인 해석 a modern take on British luxury’이라는 리브랜딩의 의도는 적어도 로고타입에서는 분명하게 달성되었다. 브랜드의 로고가 바뀌면 좋든 싫든 익숙해진 대중의 거부 반응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해외 디자인 리뷰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월등하게 많이 보이는 점도 고무적이다.
서체적인 관점에서 로고타입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로고와 서체에서 중요한 가치가 다르므로) 순전히 글꼴의 측면에서만 봤을 때 완성도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U, E의 획은 두께 측면에서 좀 더 무게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오리지널 로고가 전체적으로 톤 다운되면서 B, R의 볼에서 보이는 과감한 곡선이 다른 글자의 정적이고 직선적인 느낌과 이질감이 생겼다.